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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이야기

[연재] 인생 2막 이야기(제12화) : 복숭아 농사 한파에 무너지다- 퇴직 후 귀농 실패에서 얻은 교훈

by 조삿갓 2025. 4. 1.

 

◆  지난 제11화에서는 복숭아 농사를 짓게 된 과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제12화는 갑작스레 닥친 한파로 복숭아 농사를 포기한 과정을 담았습니다.

한파로-얼어-죽은-복숭아나무-앞에서-무릎-꿇은-남성-모습
한파로 얼어 죽은 복숭아나무 앞에서 무릎 꿇은 남성 모습

❙  겨울의 시련, 한파가 몰아치다

긴 여름이 물러가고, 어느덧 가을이 들녘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복숭아나무는 한여름 뙤약볕 아래 지친 듯, 잎사귀를 떨구며 겨울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가지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이 마지막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고, 바람 사이로 지나가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렇게 계절이 흐르고, 어느덧 2011년 1월. 유난히도 추운 겨울이었다. 기상청에서 중부지방에 한파가 닥치고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진다는 일기예보가 나왔다.

 

며칠 뒤, 복숭아 주산지인 이천 장호원 지역의 복숭아나무들이 한파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우리 복숭아나무는 괜찮은 것일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천시 복숭아연구소를 찾아가 복숭아나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연구소의 연구원은 "장호원 지역은 찬 기류가 머무는 곳이라 한파 피해를 받기 쉽습니다. 복숭아는 사과나 배보다 추위에 훨씬 약하죠. 나무 밑동의 껍질을 벗겨 흑갈색이 보이면 죽은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나는 곧장 과수원으로 차를 몰았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과수원에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복숭아나무들이 눈 속에 서 있었다. 오른손에 낫을 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무 밑동의 껍질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한 그루, 두 그루, 세 그루... 벗기는 나무마다 전부 흑갈색의 속살이 드러났다. 복숭아나무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전부 얼어 죽은 것이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팔다리에 힘이 풀렸다. 오른손에 쥐고 있던 낫을 그만 바닥에 떨구고 말았다.

 

따가운 햇살 아래서 잡초를 뽑고, 농약통을 등에 메고 나무를 소독하던 날들... 새들이 복숭아를 쪼아 먹지 못하도록 일일이  봉지를 씌우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는 무릎이 꺾인 채 눈밭 위에 주저앉았다. 서러움이 복받쳐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왕 죽을 거라면 좀 일찍 죽을 것이지... 4년 동안 애써 왔는데, 지금 와서 죽어버리면 난 어떡하란 말이냐?"

 

어느새 나는 복숭아나무를 원망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선택한 복숭아 품종은 당도가 높고 맛도 좋지만, 추위에 매우 약한 품종이었다. '남들이 안 해본 걸 해보자'는 생각으로 도전한 거였지만, 추위에 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  실패한 도전, 그리고 뼈아픈 교훈

4년 전, 복숭아나무를 심기 전에 어떤 환경에서 잘 자라는지 알아보려고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내가 심은 품종은 중부지방인 장호원에서 한 번도 재배해 본 적 없는 신품종 인지라, 어떻게 자랄지 아무도 몰랐다. 그 품종을 개발한 농민조차도 남부지방에서만 재배했기 때문에 한파에 대비한 매뉴얼이 없었다. 나는 미지의 길을 선택한 셈이었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에는 기회도 있지만,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는 걸 이번 일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특히 농사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단순한 계산이 통하지 않는 세계였다. 자연의 변수 앞에서 인간은 너무도 무력했다.  

 

나는 복숭아를 통해 생애 첫 농사의 성취를 맛보았고, 동시에 좌절도 느꼈다. 경매장에서 내 복숭아가 최고 등급에 올랐을 때의 기쁨. 친구들이 "복숭아에 설탕 뿌렸냐"면서 맛있다고 했던 칭찬들.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날아간 듯했다.

 

시골로 내려와 과수원 규모를 늘리고 복숭아 농사를 본격적으로 짓고 싶었지만, 갑작스러운 한파로 나무들이 전부 얼어 죽는 바람에 귀농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긴 것이다.

 

농사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다른 작물들과 차별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누구나 쉽게 재배하는 흔한 작물로는 용돈 벌기도 어렵기 때문에 그 복숭아 외에는 마땅한 작물을 찾을 수 없었다.

 

평생을 농촌에서 잔뼈가 굵은 농민들도 농사로 돈 벌기 힘든데, 도시의 온실 같은 사무실에서 펜대만 굴리던 공무원 출신이 농사로 성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 현실 앞에서 나는 복숭아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닭갈비 식당 운영, K사 근무에 이어 복숭아농사까지. 내 인생 2막을 위해 시도했던 세 번의 도전은 모두 실패로 끝난 것이다.

 

복숭아가-주렁주렁-열린-복숭아-과수원-전경
복숭아가 주렁주렁 열린 복숭아 과수원 전경

 

❙  다시 일어서게 한 한 통의 전화

어떻게 귀농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사방이 꽉 막힌 좌절감에 한숨만 쉬고 있던 2011년 3월의 어느 날이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 기억조차 희미해진 옛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오랜만에 나를 만나 술 한잔하고 싶다는 전화였다. 다음 날, 평택항 근처의 허름한 횟집에서 우리는 마주 앉았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옛 얘기를 나누던 중 친구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논산에 농공단지를 조성하려다 실패하고 방치된 7천 평짜리 땅이 있는데, 오리 키우기 딱 좋은 곳이야. 나랑 같이 오리 키워보지 않을래?"

 

그 한마디가 내 가슴에 불씨를 지폈다. 당시 웰빙 열풍으로 오리고기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었고, 오리요리 전문점도 우후죽순 생겨나던 때였다.

 

나는 곧장 한국오리협회, 축산과학연구원 등을 방문하여 오리고기 산업 전망을 조사했고, 전문가들은 전망이 매우 좋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복숭아 농사는 실패했지만, 귀농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마음을 다잡았다. 결국 나는 시골로 내려가 농장을 짓고 오리를 키우며 살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다시금 작은 희망의 불씨가 피어오르며, 인생 2막의 새 페이지가 조용히 열리고 있었다.

 

◆  인생 2막 이야기(제12화)에 이어서, 다음 이야기는 제13화에서 계속됩니다. 그럼 제13화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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