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제7화에서는 닭갈비 식당을 폐업한 과정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이번 제8화는 닭갈비 식당을 폐업한 뒤 대통령 직속 위원회에 근무하게 사연입니다. |
❙ 식당 공과금 떼먹은 아줌마
내가 인수할 예정인 식당에 전기료와 수도세 등 공과금 45만 원이 밀려 있었다. 나는 식당 주인에게 밀린 공과금을 전부 정리한 후 식당을 인계하라고 요구했다.
식당 주인은 인상이 선해 보이고 곱상하게 생긴 아줌마였는데 "사장님!... 속고만 살았어요? 밀린 공과금은 바로 정리할 테니 염려 붙들어 매세요!"라며 나에게 나무라듯 큰소리쳤다. 입술에 침 한 방울도 묻히지 않고 어찌나 당당하게 말하는지... 나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장사꾼들이 득시글대는 세상에서는 금방 들통날 거짓말도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고, 공직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형성된 내 기준으로 그녀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 아줌마는 공과금 납부를 차일피일 미루더니 며칠 후 종적을 감췄고, 결국 그 밀린 공과금은 내가 떠안아야 했다.
호수 위에서 우아하게 노니는 백조는 볼 수 있지만, 수면 아래 물갈퀴의 움직임은 볼 수 없듯이, 내가 본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 식당 폐업 후 다시 정부과천 청사로
결국 개업 1년 2개월 만에 닭갈비 식당을 폐업하고, 천안 생활을 정리한 후 정부과천청사로 다시 돌아왔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판에 박힌 일상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사기업에서는 업무 성과가 좋고 돈 많이 벌어다 주는 직원이 우대받지만, 정부기관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특성상 상사와의 관계가 보직이나 승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공무원 생활에 권태를 느낀 나는 상사의 비위를 맞추려 노력하지 않았고, 업무도 태만히 하여 자연스레 근무 평가도 하락했다. 공무원 생활에 대한 회의감이 커졌고, 이대로라면 월급만 바라보며 일하다 인생이 끝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치스러운 불평이었지만, 당시에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 대통령 직속 위원회 근무
그러던 2003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대통령 직속으로 '농어업-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그 위원회에 지원했고, 2004년 4월부터 그곳에 파견돼 일하게 되었다.
당시 노 대통령께서는 퇴임 후 귀농하겠다는 의지가 강했고(실제로 고향 김해의 봉하마을로 귀향해 친환경 벼농사를 짓기도 했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그 위원회에서 귀농정책을 수립하게 되었다. 나도 귀농 정책 수립에 참여하면서 전국 각지의 귀농인 마을을 방문할 기회가 많았다.
폭염이 한창이던 2004년 8월 초 어느 날이었다.
전북 장수군에 있는 '장수하늘소'라는 귀농인 마을을 방문했다. 방송계에서 일하다 은퇴한 20여 명이 동호회를 결성해 단체로 귀농한 마을이었다. 그 마을 정자나무 아래서 귀농인들과 갓 따온 수박을 안주삼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간담회를 시작했다.
이번 방문의 목적이 귀농인들의 고충을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화의 주제는 '귀농인들의 삶'이었다.
"자연과 함께하는 시골 생활이 너무 행복해요"
"도시에서는 24시간 찜질방에서 쉴 수 있었는데, 시골엔 쉴 곳이 없어요" 등 숱한 애환이 쏟아졌다.
귀농인들의 깊은 속내는 다 알 수 없었지만, 정자나무 아래 둘러앉아 막걸리잔을 기울이는 여유로운 모습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하루 종일 성냥갑 같은 건물에 틀어박혀 보고서 작성에 매달리는 내 삶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 위원회 파견 종료 후 다시 정부과천청사로
'농어업- 농어촌 특별대책위원회'에 파견된 지 어느새 1년 2개월이 지나 파견 기간이 종료되고, 나는 다시 정부과천청사로 복귀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판에 박힌 일상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근무시간 중에도 때때로 귀농인 마을 정자나무 아래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장면이 아련히 떠오르곤 했다.
공무원 생활이 싫어지기 시작하더니, 싫다는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아무리 마음을 바꾸려고 노력해도 이미 콩밭에 가 있는 내 마음은 되돌려지지 않았다.
1998년 겨울, 초자연적인 치유를 체험(제6화 참조)한 후부터 내 인생관은 완전히 바뀌었고, 내 마음은 확실히 공무원 생활과는 멀어져 있었던 것이다.
날이 갈수록 농촌 생활이 그리웠다. 마음 한켠에는 흙내음 가득한 시골 풍경이 늘 떠올랐고, 지긋지긋한 공무원 생활을 끝내고 언젠가 나도 자연 속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열망이 점점 커져만갔다.
'귀농을 하려면 공무원을 그만둬야 하는데...' 아내의 반대는 불 보듯 뻔했다. 어떻게 해야 아내를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서울 강남에서 작은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는 친구와 과천시민회관 구내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식당 창가에 앉아 아래층 수영장에서 한가롭게 물장구치는 아줌마들을 내려다보며 돈까스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친구를 향해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다.
"참 팔자 좋은 사람들도 많네... 공무원 생활이 지겨워 죽겠는데, 나도 다른 일을 하며 살아볼 수 없을까?" 라며 친구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한참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친구가 불쑥 입을 열고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거 잘 됐네... 우리 회사 건물 2층에 'K'라는 조그만 회사가 들어왔는데,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애칭) 쪽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곳이야. 그 회사 대표가 내 고향 후배인데, 후배에게 얘기해 볼 테니 거기서 일해 보는 게 어때?"라는 것이다.
◆ 인생 2막의 여정(제8화)에 이어서 다음 이야기는 제9화에서 계속됩니다. 그럼 제9화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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