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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이야기

[연재] 인생 2막 이야기(제10화) : 인생 2막의 첫발을 내딛다

by 조삿갓 2025. 2. 28.
◆  지난 제9화에서는 공무원을 퇴직한 과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제10화는 공무원 퇴직 후 들어간 첫 직장에서 불과 2개월만에 떠나게  된 사연입니다.

 

회사에서-업무에-몰두하는-직원들-모습
회사에서 업무에 몰두하는 직원들 모습

❙  공직을 떠나 맞이한 첫날

2010년 5월의 어느 날, 잔잔한 봄비가 창가를 두드리며 새날이 밝았다. 휴대폰 알람 소리와 함께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내  나이 52세, 인생 2막을 알리는 휘슬이 울린 것이다.

 

"오늘부터 나는 공무원이 아니다.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수십 년간 익숙했던 공직에서 벗어난 첫날.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아침이었다. 잠시 머물다 가는 세상... 백 년도 힘든 인생... 천년을 살 것처럼 아등바등 살았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공직에 집중하며 사는 동안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왔기에, 이제부터는 매사 조심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서울 강남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늘부터 출근할 곳은 K사. 퇴직 후 처음으로 발을 들이는 민간회사였다.

 

70평 남짓한 사무실에 낮선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사님 이쪽으로 앉으시면 됩니다."

 

책상 위에는 '기획이사'라는 직함이 적힌 명함이 놓여있었다. 손끝으로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직함만 '이사'였을 뿐, 아직 주어진 업무가 없었기 때문에 사무실 분위기 파악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K에 출근하는 한편, 나는 원래의 목표였던 귀농 준비도 함께 진행해 나갔다. 공직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세운 계획이었다.

 

주말마다 한국농수산대학교의 '주말 귀농학교'에서 농사일을 배우고, 야간에는 건국대학교 '토지 경매 교실'에서 경매 공부를 했다. 경매를 통해 낙찰받으면 농지를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업무 파악하랴... 귀농 준비하랴...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  한순간에 사라진 일터

K사에서 근무한 지 두 달이 조금 지난 2010년 7월 중순, 사무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변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경북 영일과 포항 출신 인사들의 사조직으로 알려진 '영포라인'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었다.

 

야당인 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 사람들이 포함된 영포라인 인사들이 막후에서 '정부기관 인사에 개입한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여당인 한나라당은 '재보선을 겨냥한 터무니없는 정치공세'라며 여야 공방이 가열되던 시기였다.

 

영포라인에 대한 대대적인 언론 보도 이후 우리 사무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고,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K사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한 상태였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다. 다만, K사의 미션이 영포라인 인사들과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영향이 있을 거라 짐작할 뿐이었다.

 

그러던 2010년 7월 하순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출근했더니 대표가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잠깐 옥상으로 올라가시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옥상에서 대표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고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회사의 모든 업무가 중단되고, 조직이 해체될 것 같습니다. 미안하지만... 다른 직장을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담배 연기가 바람에 흩어지듯, 내 앞날의 계획도 흩어져버리는 순간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가슴이 철렁했다.

 

공무원을 퇴직하고 첫 직장에 들어온 지 겨우 두 달 만에 백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  마주한 현실과 새로운 선택

그날 오후, 직원들은 하나둘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나도 개인 소지품을 챙기고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사무실을 나섰다.

 

텅 빈 마음으로 무작정 길거리를 걸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선릉 입구였다. 조선 제9대 왕 성종과 정현왕후가 영원히 잠든 곳.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 선릉 숲길을 따라 걸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치 내 마음처럼 온통 뿌옇게 물든 하늘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아침 출근하는 척하며 집을 나섰다. 하지만 딱히 갈 곳도 없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이고, 롯데월드 아이스링크 관중석에 홀로 앉아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물었다.

 

"오늘 회사 일은 어땠어?"

 

"응... 그저 그랬어"

 

나는 시선을 피하며 짧게 대답했다. 며칠이 지나도록 아내에게 사실을 말할 엄두가 나질 않아 이리저리 피해만 다녔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언제까지 아내를 속이고 거리를 헤맬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문득 4년 전 귀농을 위해 미리 사둔 복숭아 과수원이 떠올랐다.

 

"그래... 애초에 귀농을 위해 공무원을 그만둔 거였잖아. K사는 단지 귀농 준비를 위한 징검다리였을 뿐이다. 이제 진짜 내가 원했던 일을 시작할 때야..."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귀농에 속도를 내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부터는 복숭아 과수원에 온전히 집중하기로 작정했다.

 

하루라도 빨리 시골로 내려가 복숭아 농사를 짓겠노라 결심하고 서둘러 과수원으로 향했다. 본격적인 인생 2막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인생 2막 이야기(제10화)에 이어 다음 이야기는 제11화에서 계속됩니다. 그럼 제11화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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