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제10화에서는 공무원 퇴직 후 얻은 첫 직장에서 겪은 좌절과 시련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제11화는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복숭아 농사에 도전하며 겪은 희망과 성취의 이야기입니다. |
❙ 복숭아 농사의 첫걸음
과수원에 도착해 보니 진입로는 잡초로 무성해져 있었다. 지난주에 뽑았던 잡초들이 한여름의 놀라운 생명력으로 다시 자라난 것이다. 나는 또다시 잡초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4년 전, 이 과수원 부지를 처음 구입했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 이곳은 차량조차 들어갈 수 없는 맹지였다. 과수원 바로 앞에 다른 사람의 땅이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반드시 차량 진입로가 있어야 했고, 그러려면 앞의 땅을 매입해야만 했다. 앞땅 주인을 찾아가 진입로에 필요한 50평 정도만 땅을 팔아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싸늘했다.
"원하면 사고, 아니면 말고. 알아서 하세요!"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그의 의도는 분명했다. 내가 진입로를 만들지 못하면 과수원 자체가 무용지물이 된다는 점을 무기 삼아 바가지를 씌우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의 속셈을 예상하고 있었다.
"더 이상 협상할 필요가 없겠군요" 나는 그와의 협상을 접었다.
사실 과수원 부지를 구입할 때부터 나는 플랜 B를 준비해 두었다. 과수원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농수로의 일부를 복개하면 진입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곧바로 농수로 관리를 담당하는 이천시에 민원을 제기했고, 복개 허가를 받아냈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단 이틀 만에, 그것도 300만 원이라는 적은 비용으로 반듯한 차량 진입로가 완성되었다. 이로써 과수원의 가치는 크게 올랐고, 나는 그곳에 1,200그루의 복숭아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내가 선택한 복숭아는 평범한 품종이 아니었다. 당도가 15 브릭스에 달하고,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인 '차돌'이라는 신품종이었다. 이 품종은 농업기술센터 출신의 한 농민이 개발한 것으로, 그는 25년간 해당 품종을 독점적으로 재배하고 판매할 수 있는 '품종보호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정부 과천청사에서 근무할 때, 국립종자원에서 품종 보호업무를 담당하던 지인의 소개로 귀한 묘목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심은 나무들이 이제 4년의 세월을 거쳐 탐스러운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잘 익은 복숭아 하나를 따 한입 베어 물었다. 새콤달콤한 향기가 입안 가득 퍼지며 지금껏 겪은 시련들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과수원에서 한 상자 가득 복숭아를 따서 드렁크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을 때 천장에 복숭아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환상이 보였다. 마치 복숭아나무 아래서 자는 듯한 행복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다음날, 어제 따온 복숭아를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반응을 살펴보았다.
"야, 이거 복숭아에 설탕 뿌린 거야? 이렇게 맛있는 복숭아는 처음이야!" 친구들의 입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 노력 끝에 얻은 결실
2010년 8월, 어느덧 뜨거운 햇볕이 작렬하는 한여름이 되었다. 4년 간 정성껏 가꿔온 복숭아를 드디어 수확해 장호원농협에 출하했다. 장호원농협은 농가들이 출하한 복숭아를 가락동 시장에서 경매를 통해 판매하고, 그 대금을 각 농가에 지급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농협은 경매가 끝나면 농가들이 출하한 복숭아의 경락가격을 게시판에 게시한다. 가격 발표 5분 전부터 농민들은 게시판 앞에 모여들어 긴장된 표정으로 기다린다.
마침내 가격이 게시되면 농민들의 환호성과 한숨이 터져 나온다. 높은 가격을 받은 농민은 어깨를 들썩이며 좋아하고, 낮은 가격을 받은 농민은 고개를 떨구며 돌아선다.
마치 과거시험이 끝나고 조정관리가 두루마리 명단을 게시판에 붙이면, 급제자는 환호하고 낙방자는 탄식하며 떠나는 옛날의 드라마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농민들은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의 시장가격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농산물의 가격이 곧 그들의 자존심인 것이다. 나도 농민들 틈에 끼어 게시판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내 복숭아는 과연 얼마에 팔렸을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게시판에 가격이 올라왔다. 놀랍게도 내가 출하한 복숭아가 30여 농가 중 당당히 2위를 차지하며 높은 가격에 거래된 것이 확인되었다.
잠시 후 농민들이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어떻게 농사를 그리 잘 지었어요?"
부러움과 감탄 섞인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제야 나는 깊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소중한 성공의 순간이었다.
한바탕 시골 장터 같은 시간이 흐른 뒤, 농민들이 나에게 다가와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그중 한 분이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이 복숭아나무 가지를 좀 잘라서 팔 수 없을까요? 우리 복숭아나무에 접을 붙이고 싶은데요"
나는 정중하게 설명했다.
"죄송합니다만, 이 복숭아는 보호품종이라 품종보호권자의 허락 없이는 재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지를 잘라 파는 것도 불법입니다"
농민들은 실망한 표정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농협을 나와 과수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누군가 한밤중에 과수원에 몰래 들어와 복숭아나무 가지를 꺾어 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든 것이다.
주말마다 아내와 함께 과수원을 찾아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높게 둘렀다. 그 덕분인지 나뭇가지를 꺾어가는 일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복숭아 농사는 대성공이었다. 귀농을 꿈꾸며 공무원을 그만둔 그때의 선택이, 오랜 방황 끝에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곧바로 시골에 조그만 집을 짓고 살면서 과수원 규모를 더 키워나가면, 귀농의 꿈을 이룰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휴... 이젠 살았구나!"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때까진 몰랐다. 이 조그만 행복 뒤에 새로운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 인생 2막 이야기(제11화) 에 이어 다음 이야기는 재12화에서 계속됩니다. 그럼 제12화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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