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제 8화에서는 대통령 직속위원회에 근무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제9화는 공무원을 그만두게 된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 공무원 탈출의 기회
친구의 제안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내에게 공무원을 그만두겠다고 설득할 좋은 핑계가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고민하는 척하며 "한 번 생각해 보겠다"라고 말하고는 친구와 헤어졌다. 하지만 머릿속은 이미 새로운 삶을 향한 계획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틀 후, 친구와 함께 회사 대표를 만났다. K사의 미션은 독창적 기술을 가진 예비 창업가들이 쉽게 창업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었다. 대표는 내게 기획이사직을 제안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구상을 함께 하자고 했다.
나는 대표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일주일 후부터 출근하기로 약속했다. 이번 기회에 공무원을 그만두고 K사에 근무하며 귀농 준비를 체계적으로 진행하면, 내가 꿈꿔왔던 귀농을 적절한 시기에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아내를 설득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었지만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를 불렀다.
" 나... 공무원 그만두려고 해... 새로운 기회가 생겼어"
아내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글쎄... 난 잘 모르겠으니, 당신 마음대로 해요" 라며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안방으로 휑하니 들어가 버렸다.
역시 아내를 설득하기란 쉽지 않았다. 첫날은 그렇게 실마리를 던진 것에 만족해야 했다.
다음날, 아내가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가 당신을 좀 보자고 하셔"
아내가 장인어른께 공무원을 그만두려 한다고 고자질한 것이 분명했다. 내 머릿속엔 장인어른의 노한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혼나는 게 낫겠지' 싶어 나는 곧바로 장인어른을 찾아뵙기로 했다.
어둠이 짙게 드리운 다음날 저녁, 나는 차를 몰고 처갓집으로 향했다.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마침내 도착하자 장인어른은 거실에 앉아 담배를 태우고 계셨다. 나를 보자마자 호통을 치셨다.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는 하냐?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냐?"
이어 "우리 업계에서는 공무원 출신을 소개만 해줘도 500만 원을 준다"며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으니 다시 생각해 보게"라고 말씀하셨다.
부동산업계에서는 퇴직 공무원들을 세상물정 모르는 '호구'로 여긴다는 말씀인 것이다. 당시 장인어른은 동탄신도시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고 계셨다.
나는 그날 일방적인 훈계만 들은 뒤 "내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모르겠냐? 노인네 잔소리에 휘둘리지 말아야지!..."라고 혼자 투덜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 아내와의 담판
다음 날, 나는 아내와 담판을 짓기로 마음먹고 퇴근 후 식탁에 다시 마주 앉았다.
"당신도 알잖아... 난 공무원 일 이 안 맞아.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어"
아내는 내가 공무원 생활이 지겨워 죽겠다고 푸념하는 소리를 자주 들었던 탓인지, 이미 체념한 듯 묵묵히 듣기만 했다.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던 아내의 손끝이 약간 떨리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당신 뜻을 존중할게... 대신, 퇴직금과 이천 농지는 당신이 갖고 아파트는 내 명의로 해줘"
당시 내 명의의 재산은 수원의 40평짜리 아파트 한 채와 이천에 농지 1,800평이 있었다. 이천 농지는 내가 언젠가 퇴직하면 귀농할 생각으로 4년 전에 구입한 것이다.
처음엔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아내의 동의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알겠어, 그렇게 할게"
아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떴다. 그녀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고, 나는 그 모습에서 억지로 동의한 아내의 속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공무원 퇴직의 순간
2010년 5월. 봄기운이 완연한 화창한 봄날이었다. 나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책상을 정리했다. 서랍 구석에 놓여있던 가족사진을 꺼내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동안 만지작거리던 명예퇴직 신청서를 꺼냈다. 인사과에 신청서를 제출하며 손끝이 떨렸다. 동료들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직 정년이 10년 정도 남았는데, 왜 그만두는 거야?"
당시만 해도 정부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 중 특별한 사정없이, 그것도 정년을 10년 정도 남겨두고 퇴직하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냥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서... "라며 대충 둘러대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혼자 생각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으니 불편해서 바꿔 입는 것이라고!... 이제부터 나는 자유롭게 생각하며 자유롭게 살 거라고!..."
공무원 재직 중 징계를 받거나 형사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면 명예퇴직 신청을 허가하지 않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내가 신청서를 제출하는 순간 공직을 떠난 것이다.
미리 정리해 둔 소지품을 여행용 가방에 챙겨 넣었다. "이제야 떠나는구나!..." 실감이 났다.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떠나는 내 자리를 한 번 더 쳐다보고 사무실을 나섰다.
모두들 "공무원이 좋은 데, 뭐가 배불러서 그만두느냐?"라고 수군대는 소리가 귓전을 맴도는 것 같았다.
"근데 난 공무원 생활이 그리 즐겁지 않았어... 이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거야!"라고 속으로 외쳤다.
복도를 지나 청사 정문을 나서자 마치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불안감도 스며들었다.
"한 번쯤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겠지?" 마음을 다독이며 사무실 쪽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무실에서 야근하며 보고서를 작성하던 날들, 동료들과 함께한 회식자리, 승진을 앞두고 경쟁했던 순간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답답함과 억눌림....
"이제 진짜 자유다!... 이젠 내 인생의 2막이 시작된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하늘이 유난히 눈부셨다. 내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 자유 뒤에 얼마나 험난한 시련들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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