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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이야기

[연재] 인생 2막의 여정(제3화) : 몸과 마음이 황폐해지다

by 조삿갓 2024. 12. 21.
◆  지난 제2화(병마가 찾아오다)에서는 제가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 배경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제3화는 갑자기 찾아온 병마로 인해 몸과 마음이 황페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닭갈비-전문점-개업-행사
닭갈비 전문점 개업 행사

  닭갈비 전문점을 개업하다

공직을 떠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사무실에 앉아 펜대 굴리는 것 외에는 해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뭘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사촌 누나 생각이 났다. 얼마 전까지 천안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다 집에서 쉬고 있는 사촌 누나였다. 요리 솜씨 좋기로 소문난 누나의 도움을 받아 식당을 운영해 보고, 장사가 잘되면 공무원을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나는 식당을 차리기로 결심하고 사촌 누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처음엔 "아닌 밤중에 무슨 식당이냐?" 며 고개를 저었지만, 나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1998년 5월, 마침내 천안 고속버스터미널 맞은편 '먹자 거리'에 닭갈비 전문점을 열었다. 당시만 해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닭갈비가 인기를 끌던 때였다.

 

사촌 누나를 도와줄 종업원 두 명을 채용하고, 우리 가족은 닭갈비 가게 근처의 오래된 주공아파트로 이사했다. 나는 정부과천청사를 떠나 근무하기 한결 수월한 수원의 공무원 교육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촌누나가 식당을 운영하고 아내는 카운터를 맡았으며, 나는 퇴근 후나 휴일에 들러 일손을 거들며 장사가 잘되는지 살피곤 했다.

 

손떨림과 가슴 통증은 여전했지만, 공무원 교육원 업무는 정부과천청사보다 업무 강도가 훨씬 낮아 한결 수월했다. 틈틈이 휴식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힘든 상황에도 견딜만했다.

 

출근하랴... 식당일 신경 쓰랴... 천안과 수원을 바쁘게 오가다 보니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팔다리 마비 증상이 찾아오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아침이었다. 평소처럼 잠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왼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손톱으로 꼬집어 보고, 송곳으로 찔러봐도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자 증상은 더욱 악화되어 왼쪽 다리마저 저리기 시작했고, 왼쪽 어깨부터 발끝까지 서서히 감각이 사라져 갔다. 다행히 오른쪽은 멀쩡했지만, 왼쪽을 못쓰는 반신불수가 될 것 같은 새로운 공포에 휩싸였다.  

 

결국 대전대학교 천안한방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일반 병원에서는 병명은커녕 원인조차 알 수 없다고만 하니 한방 병원을 찾았던 것이다.

 

진찰이 끝나자 의사는 "팔다리 마비의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일단 침부터 맞아 보자"라고 했고, 나는 온몸에 50개가 넘는 침을 빼곡히 맞은 채 병상에 누웠다.

 

얼마 후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와 내 체온을 재고 나가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이제 죽게 생겼네... 아무 이상도 없는데 이렇게 되다니... 쯧쯧!..." 

 

그  순간, 나는 온몸에 꽂힌 침도 잊은 채 벌떡 상체를 일으키며 "아가씨, 지금 뭐라고 했어요?"라고 물었다.

 

간호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아니...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둘러대고는 황급히 병실을 빠져나갔다.

 

간호사가 나간 뒤 난생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혼자 남은 병실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과 삶의 허무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며칠 동안 병원에서 침을 맞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나는 첨단 의학으로도 원인을 알 수 없고, 치료도 불가능한 이 저주스러운 병의 정체를 찾기 위해 더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밤새 인터넷을 뒤지며 내 증세와 관련된 정보를 찾았지만, 결국 마음을 굳게 다잡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몸과 마음이 황폐해지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집을 나서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운전대에 양손을 올린 채 차를 몰아가다 보니 어느새 태조산 등산로 입구였다. 

 

팔다리 마비 증세로 걷기가 불편했지만, 지팡이에 의지하며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걸음씩 내딛다 보니 어느새 산 중턱에 다다랐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짙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고, 발아래 먼발치엔 천안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잠시 숨을 고르고 서있자니, 온 세상이 내 마음처럼 흐릿하고 우울해 보였다.

 

내리막길에 들어서자 등산객들의 발길에 짓눌려 일그러진 나뭇잎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 잎사귀들도 내 신세와 같아 눈물이 울컥 났다.

 

우울한 생각에 잠겨 한참을 내려가는데, 저 멀리 사찰에서 나지막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만큼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편안한 마음을 붙들고 싶어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레코드 가게에 들러 염불 테이프를 하나 샀다.

 

헤드폰을 귀에 꽂고 밤이고 낮이고 틈만 나면 염불 소리를 들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마음속에 평안이 깃드는 듯했지만, 얼마 안 가 염불 소리는 소음으로 바뀌어버렸다.

 

손떨림과 가슴 통증, 그리고 팔다리 마비 증상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술에 취해 잠시 잠들었을 때뿐이었다.

 

영원히 잠들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숙취가 가시면 어김없이 깨어났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면 끔찍한 통증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빚쟁이처럼 찾아왔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가슴을 움켜쥔 채,  밤새도록 천장만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황폐해 갔고, 어느새 나는 술을 끼고 사는 저주받은 인간으로 변해 있었다. 20년 넘게 지켜온 공직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한계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끝.

◆  인생 2막의 여정(제3화)에 이어서,  다음 이야기는 제4화에서 계속됩니다. 그럼 제4화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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