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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이야기

[연재] 인생 2막의 여정(제2화) : 병마가 찾아오다

by 조삿갓 2024. 12. 19.
◆  지난 제1화(연재를 시작하며)에서는 제 인생 2막의 전반적인 여정을 간략히 소개했습니다.
     
     이번 제2화는 제가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 배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예고 없이 찾아온 손떨림

1996년 11월의 어느 금요일 저녁, 내가 정부과천청사에서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때였다. 그날은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나와 아내 그리고 두 아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았고, 식탁에는 내가 좋아하는 갈치구이를 비롯해 맛깔스러운 반찬들로 가득했다. 평소 바쁜 일상에 쫒게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일이 드물었기에, 그날따라 아내가 저녁 준비에 특별히 정성을 들인 것 같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갈치구이에 시선이 꽂혔다. 젓가락으로 갈치구이 한 토막을 집어 올리는 순간, 갑자기 내 오른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바람결에 나뭇잎이 흔들리듯 떨리는 손끝을 보자 당혹감이 밀려왔다.

 

"왜 그래요?" 옆에 앉아있던 아내가 놀란 눈빛으로 물었다.

 

"음... 요즘 좀 피곤해서 그런가 봐..."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겨우 식사를 마쳤다.

❙  깊어가는 고통의 나날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시간이 갈수록 손떨림 증상은 더 심해졌다. 그러다 며칠 뒤에는 또 다른 문제가 찾아왔다. 가슴속에 커다란 돌멩이가 박힌 듯 묵직한 통증이 느껴지더니, 이내 거대한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강한 압박감에 숨쉬기조차 힘들어졌다.

 

손떨림에 이어 가슴 통증까지 겹치자 불안한 마음이 자리 잡았다. 약국에 가서 증상을 설명하고 진통제를 사 먹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으니 푹 쉬면 나아질 것"이라며 이름 모를 약만 처방해 주었다. 일주일 동안 꾸준히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다시 병원을 찾아 통증을 호소했지만, 의사는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족이-둘러앉아-식사하는-모습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하는 모습

❙  잠 못 드는 밤과 술의 유혹

시간이 갈수록 통증은 더 심해졌고, 낮에는 그럭저럭 견딜 수 있었지만 밤마다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출근하려면 충분한 수면이 필요한데, 밤새 잠을 설치고 출근하니 머리가 멍하고 졸음이 쏟아져 업무를 볼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잠이라도 좀 잘 수 있을까? 생각 끝에 떠올린 것은 '술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밤늦게 잠자리 들기 전에 술을 마시고 잠을 청해보기로 한 것이다.

 

모두들 잠든 한밤중에 식탁에 홀로 앉아, 마른 멸치 안주삼아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술기운은 빠르게 몰려왔다. 취기가 오르고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러나 그 평온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잠든 지 두어 시간 지나고, 숙취가 가시면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강한 통증에 도로 잠에서 깨어났다.

 

다시 잠들기 위해서는 또 술의 힘을 빌려야 했다. 술 마시고... 잠들고... 깨어나고... 다시 술 마시고... 잠들고... 깨어나는 사이클이 밤새 끝없이 이어졌다. 한 밤중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속에서 마시는 술의 양도 점점 늘어만 갔다. 

 

전날 밤 과음한 상태로 출근하면 여전히 술기운이 남아 있었고, 코를 킁킁거리며 "술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두리번거리는 직원들의 시선이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밤마다 술을 잔뜩 마신채로 출근하는 악순환은 결국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속이 메스꺼워 자리에 앉아 있기 조차 힘들어졌다. 어쩔 수 없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식사도 거른 채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며 숙취를 떨쳐내곤 했다.

 

힘든 시간들은 끝없이 이어졌고, 며칠이 더 지나자 식욕마저 사라졌다. 밥을 먹어도 모래알을 씹는 것 같고, 삼키기도 힘들어 우유에 미숫가루를 타서 허기를 채우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손떨림과 가슴 통증은 점점 심해져 가는데도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만 하니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보다 못한 아내가 "굿이라도 한 번 해봐야 하지 않느냐?"며 성화를 부렸지만, 철저한 무신론자인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아내의 성화가 더 심해지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봐!..."라고 쏘아붙이며 대화를 피하곤 했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신경정신과와 심리학 서적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이 저주스러운 병을 스스로 극복하겠노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정신일도하사불성( 精神一到何事不成) :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면 어떤 일이든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나는 이를 실천해 보기로 했다.

 

매일 새벽마다 과천시민회관 옆 국선도 도장에서 단전호흡 수련을 하고, 퇴근 후엔 집 근처 인덕원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밤새 뛰어다니며 "이 저주스러운 병을 이겨내고야 말리라!"고 외쳐댔다. 주말에는 혼자 산에 올라 "나는 이겨낼 수 있다!"라고 수없이 되뇌며 나 스스로를 강하게 다독였다. 

 

그렇게 다짐하며 반복한 노력의 효과였을까? 잠시 증상이 나아지는 듯했지만, 얼마 안 가 용수철처럼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갔다.

❙  무너져가는 일상

설상가상으로 집안에 금전 보증 사고까지 터졌다. 결국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안산시 중앙역 근처의  상가 건물 2층에 세 들어 살아야 했다. 전셋값이 싼 곳을 찾다 보니 정부과천청사에서 멀리 떨어진 안산까지 이사한 것이다.

 

금전 보증사고의 책임 소재를 두고 아내와 심하게 다툰 뒤로는 부부 사이의 대화도 완전히 끊어졌고, 남모를 고통을 나 홀로 감당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모든 일들이 꼬여만 갔고 더 이상은 버텨낼 힘도, 재간도 없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겨우겨우 버텨왔지만 업무 강도가 높은 정부과천청사에서 계속 일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고, 공직을 떠나야 하는 건 아닌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직 어린 두 아이 때문에 섣불리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공직을 떠나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끝.

 

◆  인생 2막의 여정(제2화)에 이어서, 다음 이야기는 제3화에서 계속됩니다. 그럼 제3화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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